은행들 신규 고객 잡기 경쟁, 고금리 적금 쏟아진다

2026-08-24 21:19

 은행권의 적금 금리 경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최고 연 12% 금리를 내건 상품까지 등장하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고금리 적금’이 다시 금융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상품들은 단순히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용카드 사용부터 급여이체, 계좌 잔액 유지, 자동이체 등 은행과의 거래를 늘려야 최고금리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가장 눈에 띄는 상품은 KB국민은행의 ‘KB카드쓰담적금’이다. 지난 21일 출시된 이 상품은 최고 연 12% 금리를 내걸었다. 6개월 만기로 월 1만원부터 30만원까지 자유롭게 납입할 수 있으며, 10만좌 한도로 선착순 판매된다.

 

다만 처음부터 연 12%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금리는 연 2%다. 최근 6개월간 KB국민카드 이용 실적이 없는 고객이 카드를 새로 발급받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6%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급여 첫 거래와 계좌 평균잔액 조건을 충족하면 추가 우대금리가 붙는다.

 

신한은행도 고금리 경쟁에 가세했다. 지난 14일 출시한 ‘신한 적금 9단’은 최고 연 9% 금리를 제공한다. 다음 달 말까지 20만좌 한도로 판매되며, 최근 6개월간 신한은행 예·적금이나 청약 상품을 보유하지 않은 신규 고객이 주요 대상이다.

 

월 납입액은 최대 30만원이며 1년 만기로 가입할 수 있다. 신규 고객 가운데 조건을 충족하면 최고 연 9%를 받을 수 있고, 그 밖의 신규 고객에게도 연 8% 금리가 적용된다. 기존 고객 역시 신한카드 이용 조건 등을 충족하면 연 5% 금리를 받을 수 있다.

 


하나은행에서는 ‘오늘부터, 하나 적금’을 내놨다. 최고금리는 연 7.7%다. 최근 6개월 동안 하나은행 상품을 보유하지 않은 고객에게 연 6.7%를 제공하고 자동이체와 마케팅 동의 조건을 충족하면 각각 0.5%포인트가 추가된다. 가입 기간은 6개월이며 월 최대 2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우리은행의 ‘우리 빙고 적금’은 금융거래를 많이 할수록 금리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기본금리는 연 2.75%지만 급여·연금·생활비 입금, 공과금 자동이체, 우리카드 결제, 환전·해외송금, 주택청약 등 9가지 금융거래 미션을 통해 빙고를 채우면 최고 연 10.25%까지 받을 수 있다.

 

월 납입 한도는 50만원이며 1년 만기 상품이다.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여러 금융거래를 한 은행으로 모아야 한다는 점에서 신규 고객 확보를 넘어 주거래 고객을 붙잡으려는 은행들의 전략이 엿보인다.

 

자녀를 둔 금융 소비자를 겨냥한 상품도 있다. 카카오뱅크의 ‘우리아이적금’은 만 17세 미만 자녀를 대상으로 부모가 가입하는 상품이다. 월 최대 2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으며 1년 만기 동안 6개월 이상 자동이체로 납입하면 연 7%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만기 시점에 자녀가 만 18세 미만이면 자동 연장도 가능하다.

 

문제는 ‘연 12%’, ‘연 10%’ 같은 숫자만 보고 가입했다가는 기대했던 만큼의 이자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고금리 적금 대부분은 기본금리와 우대금리의 차이가 크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기본금리가 연 2%인 반면 최고금리는 연 12%로, 10%포인트가 우대금리다. 결국 카드 사용과 급여이체, 계좌 잔액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최고금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은행들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고금리 적금을 내놓는 배경에는 시중 자금을 끌어모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실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이달 20일 기준 약 998조7000억원까지 늘어나 1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반면 투자자예탁금은 최근 고점과 비교해 크게 감소하면서 금융시장 안에서 자금 이동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예금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금 손실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예·적금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 같은 수신 경쟁이 맞물리면서 한정 판매나 신규 고객 전용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적금은 금리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한 상품은 아니다. 월 납입 한도가 얼마인지, 만기가 얼마나 되는지, 기본금리와 우대금리가 각각 얼마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카드 발급이나 일정 금액 이상의 카드 사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금 금리를 받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늘리는 일이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최고 연 12%’라는 문구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리다. 신규 고객 조건을 충족하는지, 카드나 급여이체를 이미 이용하고 있는지, 우대금리 조건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를 따져본 뒤 가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은행권의 고금리 적금 경쟁이 다시 불붙으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졌다. 하지만 높은 숫자에만 현혹되기보다 가입 조건과 실제 수익을 비교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붓질 몇 번에 오리가 둥둥, 이강소의 찰나

다.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그의 조각 실험은 인간의 인위적인 의도를 걷어내고 중력과 속도, 물질의 본성이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질서를 탐구해 왔다. 억지로 다듬지 않은 투박한 흙의 모습은 작가의 손끝을 거쳐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난다.서울 롯데뮤지엄에서 막을 올린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는 거장의 50년 예술 여정을 150여 점의 작품으로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그간 회화에 가려져 있던 조각과 판화의 비중을 높여 작가의 다각적인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1973년 명동화랑에서 선보였던 전설적인 퍼포먼스 '소멸'이 53년 만에 재현되어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 놓인 낡은 탁자와 의자는 과거의 복원을 넘어 새로운 시간과 관객을 만나며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낸다.이강소의 작업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은 '비움'과 '무위(無爲)'다. 그는 붓을 잡을 때조차 미리 정해진 형상을 쫓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붓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예기치 못한 신비로운 이미지가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화면 속 오리나 배의 형상은 뚜렷한 실체가 아니라 몇 번의 붓질이 남긴 흔적일 뿐이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나의 아성'을 죽이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의문은 그의 설치 작품 '여백'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낙동강변의 갈대를 전시장으로 옮겨온 이 작품은 거울과 관람객의 모습이 투영되며 매 순간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 닭의 발자국을 작품으로 삼았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요소를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우리가 보는 그대로인지 묻는 거장의 질문은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다.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2025년 신작 '바람이 분다' 연작은 노장의 멈추지 않는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 화선지와 먹을 활용해 한국화의 형식을 빌려온 이 작업에는 수십 년 전 지인에게 받은 낙관이 찍혀 있다.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붓질이 교차하며 나타남과 사라짐의 미학을 완성한다. 검은 물감 위에 흰색을 덮어 지우고 다시 드러내는 과정은, 끊임없이 의도를 지워내려는 작가의 치열한 고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새벽 작업실로 향하는 이강소는 여전히 다음 작업을 궁리하는 현역이다. 익숙해진 방식을 버리고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의 태도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회화와 조각, 사진과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어온 그의 실험은 11월 1일까지 관람객들과 만난다. 거장이 빚어낸 찰나의 흔적들은 우리가 믿어온 실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