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 야구 대신 롤, LCK 3년 연속 지상파행

2026-08-21 21:29

 주말 낮 TV 스포츠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야구 중계가 익숙했던 지상파 황금 시간대에 온라인 게임 결승전이 3년 연속 편성되면서, 이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안방 스포츠’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MBC는 2027년까지 국내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리그인 LCK 결승전을 생중계한다. LCK 주관사인 라이엇 게임즈는 21일 MBC와 2026년과 2027년 결승전 중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첫 지상파 생중계에 이어 올해와 향후 2년까지 편성이 이어지면서, LCK 결승전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 연속 지상파 전파를 타게 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시간대다. 올해 결승전은 9월 13일 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이 시간은 지상파에서 프로야구 등 전통 스포츠 중계가 배치되던 대표적인 주말 낮 시간대다. 방송사가 이 자리에 이스포츠 결승전을 연속 편성한 것은 롤이 더 이상 일부 게임 팬만의 콘텐츠가 아니라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상파 중계는 시청층 확장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기존 LCK 팬들은 온라인 중계 플랫폼과 스트리밍 환경에 익숙하지만, TV 생중계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채널만 돌리면 경기를 볼 수 있는 만큼 롤을 잘 모르는 중장년층이나 가족 단위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다. 자녀가 보던 게임을 부모가 함께 보는 장면이 스포츠 중계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방송사도 초심자 시청자를 의식하고 있다. 롤은 챔피언, 라인, 오브젝트, 교전 등 경기 구조와 용어가 낯선 시청자에게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다. 이에 MBC는 경기 규칙과 주요 장면을 쉽게 풀어주는 방식의 중계를 준비하고, 스포츠뉴스 등을 통해 결승 진출팀과 주요 선수들의 이야기를 미리 소개할 계획이다. LCK의 경쟁력은 국제 무대 성적으로도 확인된다. 

 


한국 리그 소속 팀들은 롤 최고 권위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에서 10차례 정상에 올랐다. 국가대표팀도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다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2연패에 도전한다.

 

올해 결승전 무대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이다. 결승에 오를 마지막 한 팀을 가리는 경기는 하루 전인 9월 1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대형 공연장과 지상파 생중계, 주말 낮 시간대가 결합하면서 LCK 결승전은 게임 팬덤 행사를 넘어 대중 스포츠 이벤트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3년 연속 지상파 편성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는 이스포츠가 단순한 놀이 문화를 넘어 전 세대가 공유하는 주류 스포츠로 안착했음을 상징한다. 방송사와 게임사의 전략적 협력이 향후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문지안 기자 JianMoo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벽에서 느껴지는 체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묻다

주변 금속판을 녹슬게 하며 기묘한 그림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붓을 들지 않았음에도 시간과 자연의 섭리가 철판 위에 예술을 새겨 넣은 것이다. 이는 한국 개념미술의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고(故) 우순옥 작가의 대표작 '연기드로잉'이 보여주는 찰나와 영원의 기록이다.성곡미스트관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 '우순옥-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작가의 1980년대 초기작부터 작고 직전의 유작까지 20여 점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우순옥은 평생 존재와 기억,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를 탐구해온 예술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철학적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연필과 파스텔 같은 전통적 매체는 물론, 녹슨 철판과 식물, 낡은 가구 등 일상의 사물들은 그의 손을 거쳐 존재를 증명하는 매개체로 변모한다.작가의 예술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우연성'과 '비통제'다. 예술가가 모든 것을 의도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는 사물이 지닌 고유한 시간성과 자연스러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한 연기드로잉처럼, 작가는 무대를 설정할 뿐 실제 그림을 완성하는 주체는 물방울과 수증기, 그리고 흐르는 시간이다. 이러한 태도는 삶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반영한다.전시장 한편의 '따뜻한 벽'은 관람객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평범한 흰 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체온과 유사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미술관의 불문율을 깨고, 관객은 벽을 만지며 그 안의 생명력을 감각해야 한다. 차갑고 단절된 공간을 상징하는 벽이 임신부의 배처럼 따스한 곡면과 온기를 품음으로써,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고리 안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또 다른 공간에서는 검은 면천 사이로 떠오른 달을 만날 수 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12장의 천 사이를 거닐다 보면, 관객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사적인 방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경험한다. 이화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학하며 다진 그의 조형 언어는 이처럼 정적인 미학 속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개념적 지평을 넓히는 데 헌신했다.이번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관객이 머무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우순옥의 작품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중한 기억의 조각인지를 일깨워준다.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온기와 흔적은 10월 초까지 성곡미술관의 벽과 바닥, 그리고 관객의 마음속에 머물며 예술과 삶의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