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6% 최저임금 못 받아, 성별 격차 여전한 일터

2026-08-14 22:45

 국내 노동 시장에서 법이 정한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277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인 1만 30원을 채 받지 못한 임금근로자 비중은 전체의 12.4%에 달했다. 이는 우리 주변의 노동자 8명 중 1명꼴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법적 기준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저임금의 굴레는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무려 30.3%가 최저임금 미만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3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그 비율이 1.8%에 불과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대기업 종사자들은 법의 보호를 철저히 받는 반면,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소규모 업체일수록 법 위반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고용의 형태와 안정성 역시 임금 수준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잣대가 됐다. 정규직에 해당하는 상용직 노동자들 가운데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이는 3.6% 수준이었으나, 임시직은 38.5%, 일용직은 32%가 법정 기준 이하의 시급을 감내하고 있었다. 불안정한 고용 구조가 곧바로 저임금으로 직결되는 구조적 모순이 통계로 증명된 셈이다. 이는 고용 불안이 단순히 일자리의 지속성 문제에 그치지 않고, 기본적인 생존권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와 차별의 벽도 여전히 견고했다. 남성 근로자의 경우 최저임금 미달 비중이 9%였던 것에 비해, 여성 근로자는 16.2%로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여성이 주로 배치되는 직군이 저임금 서비스업이나 단순 노무직에 편중되어 있으며, 경력 단절 이후 재취업 과정에서 열악한 근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 노동자 6명 중 1명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일터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통계 수치 뒤에는 노동자를 인격체가 아닌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을 향해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무책임하다는 식의 비난 섞인 여론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프로그램 비용보다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사람을 쓰는 비정한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복사 용지나 종이컵처럼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은 경제적 빈곤보다 자신들의 노동 가치가 부정당하는 사회적 소외감에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최저임금 미달자가 속출하는 현상은 단순히 개별 사업주의 법 위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법정 최저임금이 결정되어도 현장에서 이를 지킬 여력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노동의 가치가 성별이나 고용 형태,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보다 촘촘한 근로 감독과 구조적인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 277만 명이라는 숫자가 던지는 경고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AI 시대 예술의 본질은 몸, 데블린이 던진 화두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이 작품의 경이로움에 빠져들 때쯤, 견고해 보이던 책장이 마법처럼 열리며 거울로 이루어진 무한한 미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서울 가회동의 푸투라 서울에서 막을 올린 에스 데블린의 개인전은 이처럼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에서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극적인 장치로 시작된다. 거울 미로 속에 들어선 이들은 수없이 복제된 자신의 형상과 타인의 얼굴이 뒤섞이는 기묘한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이번 전시는 비욘세와 아델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무대를 설계하며 '스펙터클의 거장'이라 불려온 에스 데블린의 철학을 집대성한 자리다.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 등 수만 명을 열광시켰던 그의 이력은 언뜻 화려한 겉치레에 집중할 것 같지만, 실상 그가 추구하는 핵심은 '거대한 규모의 친밀함'에 닿아 있다. 수만 명의 군중 속에서도 결국 예술을 경험하는 주체는 개별적인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라는 통찰이다. 작가는 거대한 빛과 거울을 도구 삼아 관객 개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내밀한 순간을 정교하게 설계해냈다.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미러 메이즈'는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거울은 본래 나를 확인하는 도구지만, 데블린의 미로 안에서는 내가 아닌 타인의 모습이 먼저 들어오거나 옆 사람의 실루엣과 나의 형상이 겹쳐진다. 이러한 시각적 어긋남은 '나'라고 믿어왔던 단단한 자아의 틀을 느슨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 실제와 반사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역설한다. 미로의 끝에서 마주하는 붉은 백스테이지 공간은 이 모든 환상이 만들어진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창작의 고통과 협업의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넘어선 생태적 관점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타원형 구조물 안에 250종의 생명을 담아낸 '컴 홈 어게인'은 서울과 런던의 생태계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다. 작가는 서울에 서식하는 수천 종의 생물 중 인간은 단 한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거울의 틀 안에 인간의 얼굴 대신 새와 곤충, 식물의 형상을 채워 넣었다. 이는 나를 타인에게 열었던 거울의 기능을 종 전체로 확장하여,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해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임을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합창으로 증명해 보인다.인공지능(AI)이 이미지를 무한 생성하는 시대에 데블린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몸'이 가진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의식이 머릿속 관념이 아닌 물리적인 신체 안에 구현되어 있다고 믿으며,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마주하는 '체화된 만남'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전시장에 마련된 '콜렉티브 포트레이트'는 이러한 신념의 실천적 공간이다. 관객들은 처음 보는 이와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 교감의 흔적을 남긴다. 그림의 기술적 완성도보다 서로를 바라보며 보낸 시간의 가치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셈이다.전시장 밖의 자연광을 안으로 끌어들인 '라인 오브 라이트'는 푸투라 서울의 건축미와 어우러져 빛의 서사를 완성한다. 앞선 기획전들이 암전된 공간에서의 몰입을 강조했다면, 데블린은 창밖의 풍경과 인공의 빛을 섞어내며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30여 년간의 고뇌가 담긴 스케치북을 관객과 공유하는 '스크린쉐어' 역시 작가와 관객이 서로의 흔적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명확히 한다. 2027년 초까지 이어지는 이번 여정은 거울과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아가 타자와 세계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긴 호흡의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