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 르펜 항소심, 대권 가도 분수령

2026-07-07 21:47

 프랑스 대권 구도를 뒤흔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실질적 수장이자 유력 대권 주자인 마린 르펜 의원이 7일(현지시간) 유럽의회 공금 유용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받는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르펜 의원이 과거 유럽의회 의원 시절 보좌진 급여 명목으로 받은 보조금을 정당 간부들의 월급으로 전용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약 75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금이 부당하게 사용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1심과 마찬가지로 르펜 의원의 공직 출마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상태다. 프랑스 정계는 이번 판결이 내년 4월로 예정된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을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긴장 속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르펜 의원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정당 고위 간부들을 허위 보좌진으로 등록해 유럽의회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2023년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3월 1심 재판부는 르펜 의원이 자금 유용 계획을 주도했다고 판단해 징역 4년과 벌금 10만 유로, 그리고 5년간의 공직 출마 자격 박탈을 선고했다. 르펜 의원은 즉각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항소했으나,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피선거권 박탈을 포함한 중형을 구형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5년간의 출마 자격 박탈형이 유지된다면, 르펜 의원은 내년 대선 1차 투표에 나설 수 없는 치명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프랑스 법조계와 현지 언론은 유죄 판결 자체는 뒤집히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쟁점은 출마 자격을 박탈하는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쏠려 있다. 1심에서 선고된 5년의 박탈 기간이 유지되느냐, 아니면 대선 출마가 가능하도록 기간이 대폭 단축되느냐가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유력 대선 주자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결정에 부담을 느껴 형량을 완화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만일 박탈 기간이 2년 이하로 줄어든다면 1심 선고 시점부터 산정되는 법리에 따라 르펜 의원은 극적으로 대선 출마 자격을 회복할 수도 있다.

 

르펜 의원이 대선판에서 탈락할 경우, 국민연합의 대안 카드로 꼽히는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바르델라 대표는 최근 유럽의회에서 르펜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하며 결속력을 과시했으나, 당 내부적으로는 르펜의 부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르펜 의원이 세 차례 대선 도전을 통해 다져온 강력한 팬덤과 상징성을 바르델라가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르펜의 출마 여부에 따라 프랑스 극우 세력의 결집력은 물론 전체 대선 지형이 완전히 재편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여론조사는 르펜 의원에게 우호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극우 진영은 내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선두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결선 투표에서도 좌파 연합의 장뤼크 멜랑송 대표 등을 제치고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르펜 의원은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념을 위해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법 리스크가 오히려 지지자들의 동정표를 자극하고 "기득권 사법부의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오늘 선고될 항소심 결과에 따라 프랑스는 거대한 정치적 폭풍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르펜 의원이 대권 가도를 이어가며 프랑스 최초의 여성·극우 대통령에 한 발짝 다가설지, 아니면 법원의 철퇴 아래 정치적 은퇴 위기에 몰릴지는 이제 재판부의 입에 달렸다. 르펜 의원은 결과에 불복할 경우 최고법원인 파기원에 상고할 수 있지만,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시간은 결코 그의 편이 아니다. 엘리제궁을 향한 르펜의 네 번째 도전이 법정에서 멈추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될지 전 세계가 파리 항소법원을 주목하고 있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3천 원의 행복? 나바로·파레노 거장들 과천 집결

김태수의 설계로 문을 연 이곳은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역사적 공간이다. 10일 개막하는 특별전 '빛의 상상들'은 미술관의 지난 40년을 기념하며, 빛을 매개로 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됐다.전시의 서막은 로비에 걸린 필립 파레노의 '마퀴'가 연다. 극장 입구의 화려한 장식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네온과 전구가 깜빡이며 관람객들에게 곧 시작될 예술적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는다. 그 너머로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기념비적 유산인 '다다익선'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의 예술이 공존하는 풍경을 완성한다. 빛 예술의 선구자들과 동시대 작가들이 나누는 무언의 대화는 과천관이 걸어온 40년의 세월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미술관 3층 브릿지 공간에서는 김아영 작가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가 장소특정적 설치로 구현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플랫폼 노동과 가상세계를 신화적 서사와 결합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비정형 LED 패널을 공간에 맞춰 배치했다. 높은 층고에서 쏟아지는 영상의 빛은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주하는 듯한 경건함을 자아낸다. 기계적 미래 도시의 풍경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과천의 자연과 대비를 이루며 관람객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몰입감을 제공한다.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발전위원회가 기증한 뒤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는 보는 빛이 아닌 경험하는 빛의 진수를 보여준다. 2원형전시실의 곡면 벽을 따라 들어선 관람객들은 2시간 30분에 걸쳐 서서히 색채를 바꾸는 네모난 빛의 공간 속에서 명상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빛의 미묘한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내면의 감각을 깨우는 이 과정은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빛의 상상' 그 자체다.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이반 나바로의 설치 작업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칠레 군사독재 시절의 기억을 빛과 거울로 치환한 그의 작품들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이나 사라진 건물의 흔적을 통해 상실과 불안을 이야기한다. 네온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권력과 통제의 은유는 관람객들에게 아름다움과 공포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주목받았던 거장들의 작품을 국립미술관의 문턱 낮은 입장료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한국 미술계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케 한다.미술관 외부의 1만 평 규모 조각공원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 '머무는 자리'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폐스티로폼을 재활용해 만든 김하늘의 소파와 전통 좌식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하지훈의 자리 등은 관람객들이 직접 앉거나 기대어 쉬며 예술과 풍경을 하나로 잇는 경험을 제공한다. 자연 속에 배치된 84점의 조각들은 관객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과천관의 새로운 40년을 향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빛과 예술, 그리고 휴식이 어우러진 이번 대장정은 오는 11월 29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