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정보보호협정 꺼낸 한·EU…디지털·에너지 협력도 손잡았다

2026-06-11 10:45

이재명 대통령이 유럽연합, EU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안보·방위 분야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과 EU는 민감한 안보 정보를 안전하게 주고받기 위한 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 협상을 시작하고, 디지털 통상과 에너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10일 오후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 뒤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이 대통령은 “양측의 안보·방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밀정보보호협정은 한국과 EU가 안보·방위 영역에서 다루는 민감한 정보를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된다. 이 대통령은 국제 정세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인도태평양의 안보 환경과 유럽의 안보 상황이 더 이상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협정이 빠르게 마무리될 경우 양측 간 정보 공유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높아지고, 이를 토대로 방위산업과 첨단 연구 분야의 협력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EU가 이미 기본협정, 자유무역협정, 위기관리협정 등을 통해 정치·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의 기반을 다져왔다고 평가했다. 또 양측이 전략적 동반자로서 신뢰를 쌓아온 만큼 앞으로는 안보·방위뿐 아니라 디지털, 첨단기술, 기후변화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정세도 회담의 주요 의제였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EU의 지속적인 지지와 건설적인 역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 안정,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국제 현안과 관련해서는 중동과 우크라이나 문제가 논의됐다.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적인 개방과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 보장이 중요하다는 데 양측이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과 재건을 위해 한국과 EU가 계속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경제 협력 분야에서는 디지털통상협정 서명이 주요 성과로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 협정이 안정적인 데이터 비즈니스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한국과 EU 간 디지털 교역이 더 활발해지고, 기업들의 온라인 기반 사업과 데이터 활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국민 안전을 위한 협력도 강화된다. 양측은 승객 예약자료 전송 협정을 타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제 이동이 늘면서 마약과 총기 등 위해 물품의 밀반입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협정으로 한국 관세 당국이 EU 국적 항공사의 승객 예약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테러와 마약 등 초국가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와 에너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협력 확대가 논의됐다. 양측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인공지능과 양자기술 분야의 공동 연구와 연구자 교류를 늘리기로 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청정에너지 생산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해상풍력, 수소, 원자력, 우주 분야 협력을 언급했다. 소형모듈원전, SMR 분야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번 회담을 양측 관계에서 오래 기억될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도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공동의 이익을 지키고 양측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성과를 낸 회담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73년 금단 DMZ, 사진 80점으로 빗장 연다

13일까지 개최되는 사진전 ‘바람의 길목, DMZ’는 분단이 남긴 상흔과 그 안에서 피어난 생명력을 80여 점의 기록물로 증명한다. 이번 전시는 일본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를 비롯해 박종우, 김녕만, 최병관 등 DMZ의 찰나를 기록해온 국내외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관람객들은 철책 너머에 가려져 있던 한반도의 허리, 그 내밀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전시의 백미 중 하나는 1989년 판문점의 찰나를 포착한 김녕만 작가의 ‘우산 아래 남북 기자들’이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남북의 기자들이 하나의 대형 우산 아래 모여 담배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분단의 벽이 무색해지는 인간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왼쪽 팔뚝의 ‘PRESS’ 완장과 북측의 ‘기자’ 완장이 대비를 이루면서도, 같은 비를 피하는 이들의 모습은 DMZ가 단절의 공간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사진은 과거 사진집으로만 공개되었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 실물로 공개된다.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사진들은 DMZ 내부에 정체된 시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북이 각각 2km씩 물러나며 형성된 이 공간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잡초가 무성해져 형체만 남은 금강산행 철길과 지뢰밭 속에 둥지를 튼 두루미 떼의 모습은 전쟁의 비극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후고구려 궁예의 옛 성터인 풍천원이 적막한 산수화처럼 변해버린 풍경은 역사의 무상함과 DMZ의 고요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전시장은 최전방 GP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절경과 남북이 자존심을 걸고 벌였던 국기 게양대 높이 경쟁 등 냉전의 산물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남측의 99.8m와 북측의 160m 게양대가 대치하는 모습은 분단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또한 민간인 통제구역 내 대성동 마을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포착한 기록들은 DMZ가 단순히 군사적 공간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임을 일깨워준다.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수달의 모습은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의 허망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기획을 맡은 권기준 학예연구사는 미디어 설명회를 통해 이번 전시가 흩어져 있던 DMZ 기록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복잡한 설명보다는 강력한 시각적 이미지를 앞세워, 분단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에게 DMZ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80여 점의 사진은 각각의 프레임 속에 갇힌 역사를 끄집어내어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평화의 길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분단의 유산을 넘어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73년간 굳게 닫혀 있던 바람의 길목을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열어젖힌 이번 기획전은 오는 9월 중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창밖으로 보이는 현대적인 서울의 풍경과 전시장 내부의 적막한 DMZ 사진을 대비하며, 한반도가 처한 이중적인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박물관 측은 전시 기간 중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DMZ에 담긴 역사적 층위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