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세동기 덕에 살았지만…에릭센, 151경기서 멈추나

2026-06-08 18:21

 덴마크 축구의 심장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다시 한번 경기장 위에 쓰러지며 전 세계 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현지 시각으로 8일, 덴마크 오덴세의 네이처 에너지 파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친선 경기 도중 발생한 이번 사고는 지난 2021년 유로 2020 개막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덴마크가 한 점 차로 앞서가던 후반 20분경, 상대 진영을 누비던 에릭센은 갑작스럽게 가슴을 부여잡으며 지면에 쓰러졌고 경기는 즉시 중단되었다.

 

현장의 긴박함은 5년 전과 다름없었다. 양 팀 의무진이 급히 투입된 가운데 동료 선수들은 에릭센을 둘러싸고 그의 상태를 지켜보며 간절히 기원했다. 약 10분간의 응급 처치 끝에 에릭센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양 팀은 선수들의 심리적 충격을 고려해 경기를 공식 취소하기로 합의했다. 다행히 에릭센은 이송 과정에서 의식을 회복했으며, 스스로 구급차에 오를 정도로 안정된 상태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덴마크 대표팀 주치의 모르텐 보어센은 에릭센이 경기장에서 빠르게 의식을 되찾았으며, 삽입된 체내형 제세동기(ICD)가 비정상적인 심박수를 감지해 즉각 작동했다고 밝혔다. ICD는 심장의 부정맥을 감지해 전기 자극을 주는 장치로, 에릭센이 2021년 첫 사고 이후 수술을 통해 몸속에 지녀온 장치다. 이번 실신 역시 이 장치가 정상 박동을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적 충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을 구했다는 안도감 뒤로 에릭센의 선수 생명 연장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덴마크 현지 매체인 팁스블라데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축구계 내부에서 에릭센의 은퇴를 권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한 차례 기적적으로 복귀해 A매치 151경기를 소화하며 전설적인 길을 걸어왔지만, 반복되는 심장 문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경고라는 지적이다.

 


축구 전문가들의 의견도 은퇴 쪽으로 기울고 있다. 덴마크의 유명 해설가 모르텐 브룬은 에릭센이 다시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의 A매치 기록이 152경기에 도달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점쳤다. 심장 전문가들 역시 ICD가 작동할 때 가해지는 충격이 인체에 상당한 무리를 줄 수 있음을 경고하며, 고강도의 신체 활동이 수반되는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에릭센의 향후 거취는 정밀 검사 결과와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이번 사고는 그에게 가장 가혹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탈수나 혈압 저하 등 일시적인 요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반복된 실신은 그 자체로 선수 생명에 치명적인 신호다. 덴마크 축구의 상징이자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던 에릭센이 과연 이번에도 시련을 딛고 일어설지, 아니면 박수칠 때 떠나는 길을 택할지 전 세계 축구계의 시선이 병실의 그에게 향하고 있다.

 

문지안 기자 JianMoo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73년 금단 DMZ, 사진 80점으로 빗장 연다

13일까지 개최되는 사진전 ‘바람의 길목, DMZ’는 분단이 남긴 상흔과 그 안에서 피어난 생명력을 80여 점의 기록물로 증명한다. 이번 전시는 일본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를 비롯해 박종우, 김녕만, 최병관 등 DMZ의 찰나를 기록해온 국내외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관람객들은 철책 너머에 가려져 있던 한반도의 허리, 그 내밀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전시의 백미 중 하나는 1989년 판문점의 찰나를 포착한 김녕만 작가의 ‘우산 아래 남북 기자들’이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남북의 기자들이 하나의 대형 우산 아래 모여 담배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분단의 벽이 무색해지는 인간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왼쪽 팔뚝의 ‘PRESS’ 완장과 북측의 ‘기자’ 완장이 대비를 이루면서도, 같은 비를 피하는 이들의 모습은 DMZ가 단절의 공간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사진은 과거 사진집으로만 공개되었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 실물로 공개된다.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사진들은 DMZ 내부에 정체된 시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북이 각각 2km씩 물러나며 형성된 이 공간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잡초가 무성해져 형체만 남은 금강산행 철길과 지뢰밭 속에 둥지를 튼 두루미 떼의 모습은 전쟁의 비극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후고구려 궁예의 옛 성터인 풍천원이 적막한 산수화처럼 변해버린 풍경은 역사의 무상함과 DMZ의 고요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전시장은 최전방 GP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절경과 남북이 자존심을 걸고 벌였던 국기 게양대 높이 경쟁 등 냉전의 산물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남측의 99.8m와 북측의 160m 게양대가 대치하는 모습은 분단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또한 민간인 통제구역 내 대성동 마을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포착한 기록들은 DMZ가 단순히 군사적 공간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임을 일깨워준다.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수달의 모습은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의 허망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기획을 맡은 권기준 학예연구사는 미디어 설명회를 통해 이번 전시가 흩어져 있던 DMZ 기록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복잡한 설명보다는 강력한 시각적 이미지를 앞세워, 분단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에게 DMZ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80여 점의 사진은 각각의 프레임 속에 갇힌 역사를 끄집어내어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평화의 길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분단의 유산을 넘어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73년간 굳게 닫혀 있던 바람의 길목을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열어젖힌 이번 기획전은 오는 9월 중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창밖으로 보이는 현대적인 서울의 풍경과 전시장 내부의 적막한 DMZ 사진을 대비하며, 한반도가 처한 이중적인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박물관 측은 전시 기간 중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DMZ에 담긴 역사적 층위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