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자들, 질병명 비공개 '깜깜이 병역'

2026-05-29 21:33

 6·3 지방선거에 나선 남성 후보자들의 병역 이행 현황이 일반 국민의 평균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 명부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남성 후보 5344명 중 11.1%에 달하는 591명이 군 복무를 마치지 않았다. 이는 최근 일반 국민의 병역 이행률이 90%를 상회하는 것과 비교하면 유의미하게 낮은 수치다. 특히 광역단체장 후보의 경우 미필 비율이 24.5%까지 치솟아, 고위 공직자로 나설수록 병역 의무 이행 정도가 낮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포착됐다.

 

미필 사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실상 면제에 해당하는 전시근로역과 소집면제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질병이나 심신장애를 이유로 군문을 넘지 못한 후보자가 가장 많았는데,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구체적인 질병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특정 질병명에 대해 비공개 요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6급 판정을 받은 후보자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어, 과연 이들이 격무가 예상되는 공직을 수행할 건강 상태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은 병역 판정의 급격한 변화다. 미필 후보자 8명 중 1명꼴인 76명은 최초 신체검사 당시 현역 입영 대상인 1~3급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검 등을 거쳐 복무 비대상인 5급 이하로 하향 조정됐다. 특히 가장 건강한 상태인 1급 판정을 받고도 나중에 질병 등을 이유로 면제된 후보자가 30명에 달했다. 이러한 '등급 세탁' 의혹은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일반 청년 유권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며 선거판의 도덕성 논란을 가속화하고 있다.

 

정당별로는 진보당의 미필 비율이 23%로 가장 높았으며, 더불어민주당(12.2%)과 무소속(11.6%), 국민의힘(9.7%)이 그 뒤를 이었다. 수형 사유로 인한 미필은 과거 민주화 운동 등의 영향으로 진보 진영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생계곤란이나 장기 대기로 인한 소집면제 등 사유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자가 제출한 병적증명서의 최종 결과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어떤 과정을 거쳐 면제에 이르렀는지 상세한 경위를 파악하기에는 제도적 한계가 뚜렷하다.

 


실제로 일부 후보자들은 병역 사항에 단순히 '병역면제'라고만 기재하거나 처분 사유를 '확인 안 됨'으로 표기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는 선관위의 확인 절차가 병무청 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검증의 사각지대다. 병역 의무 이행은 공직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점에서, 불투명한 정보 공개는 유권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 국민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전시근로역 판정 비율은 공직 후보자 그룹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질병 비공개 특권 뒤에 숨어 병역 의무 회피 의혹을 명쾌하게 해소하지 못하는 후보들이 늘어날수록 지방자치에 대한 신뢰도 동반 하락할 수밖에 없다. 선거가 막바지로 향할수록 각 후보 진영은 상대의 병역 기록을 정조준한 검증 공세를 강화하고 있으며, 유권자들은 화려한 공약 이전에 후보자의 기본적인 의무 이행 여부를 냉정하게 따져보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부천아트벙커B39, 소각장에서 예술 성지로

예술의 열기를 내뿜는 공간으로 변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5년부터 하루 200톤의 폐기물을 처리하던 이곳은 환경 문제와 자원순환센터 확장으로 인해 2010년 가동을 멈췄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산업 유산은 2014년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고, 2018년 마침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공간의 명칭인 ‘B39’는 소각장의 핵심 시설이었던 벙커의 깊이 39m에서 유래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수직적 공간은 과거 생활 쓰레기가 가득 찼던 곳이지만, 현재는 창의적인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웅장한 무대로 쓰인다. 방문객들은 쓰레기의 반입부터 소각, 정화에 이르는 과거의 공정 라인을 따라 설계된 동선을 이동하며 독특한 공간감을 경험한다.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산업 시설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시민들에게는 휴식을 제공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1층은 시민과 예술가가 공존하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됐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들던 넓은 부지는 첨단 음향과 영상 장비를 갖춘 ‘멀티미디어홀’로 변신해 대규모 콘퍼런스와 기획 전시를 소화한다. 소각로가 있던 야외 공간은 벽면을 철거해 하늘을 내부로 끌어들인 ‘에어 갤러리’가 되어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적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유 주방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해 과거 소각장 주변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겪었던 이웃들이 공간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시설의 상층부로 올라가면 소각장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관과 보존구역이 나타난다. 중앙제어실은 소각 설비를 통제하던 과거의 긴박함을 간직한 채 부천시민의 활동을 기록한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4층과 5층의 보존구역은 복잡한 기계 설비가 그대로 남아 있어 SF 영화나 스릴러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이색적인 풍경은 루이비통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화보 촬영지로 선택받으며 부천아트벙커B39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올해부터 부천시가 직접 운영을 맡으면서 행정적 성과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로컬100’에 2회 연속 선정되며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자산임을 입증했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모 사업을 통해 국비를 확보하고, 오는 10월에는 대규모 미디어아트 전시인 ‘스펙트럴 크로싱스’를 준비하는 등 콘텐츠의 질적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해 ‘부천팔경’으로 선정된 이후 방문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부천아트벙커B39는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소리와 빛, 공기의 흐름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거대한 예술 작품 그 자체다. 39m 높이의 천장을 타고 울려 퍼지는 전자음악과 거친 콘크리트 벽면을 수놓는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는 방문객들에게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혐오시설이라는 과거의 굴레를 벗고 미래 지향적인 문화 아지트로 거듭난 이곳은 산업 유산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낡은 소각로에서 피어난 예술의 불꽃은 이제 부천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문화적 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