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의 개헌 시도 좌초, 12·3 계엄 교훈은 어디로?

2026-05-08 17:46

 대한민국 헌법의 틀을 새롭게 짜려던 39년 만의 시도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으로는 원만한 합의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헌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로써 오는 6월 3일 실시될 예정이었던 개헌 시행 국민투표를 위한 모든 행정적, 법적 절차는 오늘을 기점으로 전면 중단되었다. 우 의장은 산회를 선언한 뒤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닦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가 현장의 긴박함을 더했다.

 

우 의장은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비상계엄의 재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고히 하려는 개헌안에 대해, 여당이 투표 불참과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일관하며 의사 진행을 방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장으로서 역사적 책무를 다하려 했으나 물리적인 저지에 막혀 절차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국민의힘 측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며 정국 파행의 책임을 물었다.

 


청와대 역시 국회의 개헌안 처리 무산 소식에 즉각적인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유감을 표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로 개헌안 처리가 끝내 무산된 점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 청와대는 이번 개헌안이 단순히 문구를 수정하는 차원을 넘어,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고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국가의 의지를 명문화하는 중대한 과업이었음을 재차 강조했다.

 

특히 이번 개헌안에는 지난 '12·3 불법계엄 사태'와 같은 헌정 유린 행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의 계엄 통제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청와대는 이러한 조치가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적 사명이었으며, 여야 간에도 큰 이견이 없었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셈법에 의해 가로막힌 점을 지적했다. 국가 안위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마련마저 거부한 여당의 행태를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도 덧붙였다.

 


청와대는 비록 이번 본회의 처리는 무산되었지만, 시대적 과제인 개헌 논의 자체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극한의 대립과 정쟁을 멈추고 협치와 통합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개헌은 반드시 완수되어야 할 과제라고 역설했다. 이어 후반기 국회에서 여야가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며, 정부 차원에서도 개헌 추진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여야 관계는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으며,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헌법 개정을 통해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향후 정국은 책임 소재를 둘러싼 날 선 공방과 함께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세우려던 개헌안이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표류하게 되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실망감과 정치권을 향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복제 불가능한 감각의 성지, 미술관 오픈런의 본질

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시간과 감각을 통제하려는 '주체성'에 대한 요구다. 스마트폰의 알림과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수동적 콘텐츠에 지친 현대인들은, 스스로 경로를 결정하고 멈춤의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 행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한다. 러닝이 건강을 넘어선 철학적 행위가 된 것처럼, 미술관 방문 역시 알고리즘이 침투하지 못한 성역을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미술관이라는 공간은 건축적 장치를 통해 관람객에게 시간의 주권을 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은 본관에 이르기까지 700미터의 긴 동선을 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이 강제로 속도를 늦추고 걷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빛과 돌, 물이 어우러진 이 여정에서 걷는 속도는 곧 작품에 대한 해석의 속도가 된다. 인위적인 강요가 아닌 공간의 흐름에 몸을 맡길 때, 사람들은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써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자연광을 극대화한 알바루 시자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멈춤의 미학을 극대화한 공간이다. 인공 조명을 배제한 백색의 곡면 안에서 빛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걸음을 멈춰야 하며, 이 순간 관람객은 시간의 주인이 된다. 방문하는 시각과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른 빛의 층위를 마주하게 되는 이 가변적 경험은 디지털로 복제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건축이 작가의 예술 세계를 공간 언어로 번역하는 환기미술관이나 장욱진미술관 역시 관람객을 능동적인 독자로 변모시키는 힘을 발휘한다.때로는 건축이 스스로를 지우고 배경으로 물러날 때 관람객의 주체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묵직한 석재 매스와 격자형 천창은 유물을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관람객에게 광활한 선택의 자유를 부여한다. 화려한 장식을 걷어낸 빈 공간은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완성되며, 건물이 전면에 나서지 않기에 가능한 자유로운 사유가 허용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마당과 골목 구조를 통해 도심 속으로 열려 있는 방식 또한 전시 관람 여부와 상관없이 시민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머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시각 중심의 감각 체계를 뒤흔드는 시도 역시 주체성 회복의 중요한 열쇠다. 구마 겐고가 설계한 오디움은 소리를 담는 건축으로서 청각과 후각을 먼저 깨운다. 알루미늄 파이프 숲을 지나 편백 향이 가득한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시각에만 의존해온 자신의 감각 위계를 자각하게 된다. 낯선 감각의 자극은 스스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또렷하게 의식하게 만들며, 이러한 의식의 확장은 곧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면의 기준을 세우는 주체적 경험으로 이어진다.이러한 오프라인의 경험들은 결코 디지털 화면으로 복사되거나 대리될 수 없는 불가역성을 지닌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재의 질감, 전시실 사이의 미묘한 온도 차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의 온도는 반드시 현장에 몸이 존재해야만 느낄 수 있는 물리적 실체다. 정보가 스크린 너머로 치환되어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운동화 끈을 묶거나 미술관 계단을 오르는 작은 선택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감각의 지표가 된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재생 불가능한 순간들을 직접 통과하며 매일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