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 마크는 왜 우리 곁을 떠났을까

2026-04-24 19:17

 과거 동네 골목 어귀에서 가장 웅장한 자태를 뽐내던 건물은 단연 대중목욕탕이었다. 남탕과 여탕을 분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복층 구조를 갖추고 높다란 굴뚝까지 세워야 했던 목욕탕은 지역 사회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각 가정에 온수 시설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주말마다 온 가족이 함께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풍경은 흔하고 정겨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주거 환경이 현대화되고 집집마다 훌륭한 욕실이 생겨나면서 동네 목욕탕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했다. 특히 전염병 대유행 시기를 거치며 강력한 방역 조치가 시행되자 전국적으로 천 곳에 가까운 업소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줄지어 문을 닫았다. 현재는 도심 요지에 자리 잡은 초대형 찜질방이나 사우나 시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동네 목욕탕의 연쇄 폐업은 지역 사회의 취약 계층에게 예상치 못한 생활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집 근처에서 씻을 공간을 잃어버린 노인들을 위해 강원도의 일부 지자체는 세금을 들여 직접 공공 목욕 시설을 건립하기도 했다. 서울시 역시 취약 계층의 위생 관리를 돕고 혹서기와 혹한기 쉼터를 제공하기 위한 전용 목욕탕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줄도산의 위기 속에서도 폐업한 목욕탕 건물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도시 재생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내부 공간과 과거의 탕, 타일 장식 등 독특한 건축 요소를 그대로 살려 세련된 카페나 베이커리, 복합 전시관으로 개조하는 방식이다. 이는 복고풍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구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건물의 변신과 더불어 과거 골목길을 밝히던 친숙한 목욕탕 기호 역시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정부가 온천 관련 법령을 개정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백 년 가까이 널리 쓰이던 기존 로고의 사용을 제한하고 새로운 공식 마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천연 온천 시설만이 엄격한 기준 아래 해당 표식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법 개정 이전에 설치된 간판들까지 강제로 철거하는 소급 적용을 강행하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아직 재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골목길이나 변두리 지역을 걷다 보면 낡은 간판에 새겨진 옛 기호를 드물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한때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던 대중목욕탕의 찬란했던 과거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양곡창고의 변신, 도고 아트홀 방문객 140% 급증

로 쓰였던 이 공간은 이제 곡식 대신 예술의 향기를 채우는 문화 저장고로 변모했다. 2014년 코미디라는 특화된 장르로 첫발을 내디뎠던 이곳은 2024년 여름, '도고 아트홀'이라는 새 이름을 얻으며 보다 폭넓은 예술을 수용하는 복합 문화 거점으로 재탄생했다. 낡은 벽돌 사이로 흐르는 과거의 기억은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며 방문객들에게 묘한 향수와 설렘을 동시에 선사한다.아트홀의 핵심 동력은 169석 규모로 설계된 아담하면서도 알찬 공연장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화려한 서커스부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형극, 눈을 뗄 수 없는 마술쇼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라인업이 무대에 오른다. 대도시의 대형 공연장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배우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밀착형 공연은 이곳만의 전매특허다. 관객들은 무대 위 예술가들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며 단순한 관람객 이상의 유대감을 경험하게 된다.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3,000원이라는 믿기 힘든 관람료 정책이다. 고물가 시대에 커피 한 잔 가격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파격적이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는 문화적 소외를 겪기 쉬운 면 단위 지역 주민들에게 문턱을 낮추어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경제적 부담 없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주말 나들이 코스로 이곳을 선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예술의 공공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운영 철학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이러한 진심은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140%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하며 지역 문화 지형도를 새롭게 그렸다. 조용하던 온천 마을은 주말이면 공연을 보러 온 외지인들과 지역민들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때 폐허처럼 방치될 뻔했던 양곡창고가 이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 앵커 시설로 완벽히 자리 잡은 셈이다. 방문객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도고 아트홀이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음을 시사한다.운영 주체인 아산문화재단은 늘어나는 수요에 발맞춰 서비스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6월부터 전격 도입되는 온라인 예매 시스템은 그동안 현장 발권의 불편함을 겪었던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전국 어디서든 클릭 몇 번으로 도고의 공연 좌석을 미리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다는 지적을 받아온 입장료의 현실화 방안도 조만간 공론화될 예정이다. 이는 안정적인 운영 재원을 확보하고 더 질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도고 아트홀은 이제 새로운 도약의 기로에 서 있다. 양곡창고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전시관과 세련된 카페 공간은 공연 시간 외에도 방문객들이 머물 수 있는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람객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즐거움을 주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공간은 오늘도 낡은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하며 도고의 새로운 문화 연대기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